[르포] 전국 농촌 폭염에 '펄펄'…농민 한숨 '푹푹'·가축 '헉헉'
작성일 2023-07-31 17:38:39 | 조회 58
[르포] 전국 농촌 폭염에 '펄펄'…농민 한숨 '푹푹'·가축 '헉헉'
농촌 온열질환 사망자 속출…축산 농가 "더위에 가축 어쩌나"
뜨거운 낯 시간대엔 마을회관·경로당으로 대피해 더위 식혀




(전국종합=연합뉴스) "폭염이 정말 무시무시하네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31일 농민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날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위치한 약 3천305㎡(1천평) 규모 한우 축사에서는 80여마리의 소가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며 '헉헉' 거리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분뇨 냄새가 더 강해져 소들도 매우 지친 듯했다.
약 30년 동안 한우 농가를 운영해온 이곳 농장주 김종원(69) 씨는 "날씨가 너무 더워 24시간 선풍기를 돌리고, 스프링클러도 한 번씩 가동해야 한다"며 "사룟값도 오르는 판국인데 전기요금도 많이 나올 것 같다"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비슷한 시각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에서 한우 농가를 운영하는 박순길(66) 씨 역시 햇볕이 내리쬐는 축사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연일 계속된 무더위에 지쳐 쓰러진 소는 없는지 살피러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늘막에 선풍기까지 돌리고 있지만 한 마리만 죽어도 손해가 막대해 마음이 쓰인다"고 걱정했다.
다른 소 축사를 운영하는 지현봉(68) 씨도 "이렇게 더우면 소들이 많이 먹질 않을뿐더러 똑같이 먹어도 살이 안 찐다"고 하소연했다.



축산 농가뿐 아니라 다른 농가도 기승을 부리는 폭염에 걱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강원 태백 매봉산과 정선 등 전국 고랭지 배추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고랭지 배추 재배 단지 농가들은 무더운 날씨에 병해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집중호우가 내린 뒤 고온 다습한 환경이 이어지면서 무름병이 빠르게 퍼질 조짐을 보이는 까닭이다.
농민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밭으로 나가 배추에 약을 뿌리며 굵은 땀방울을 닦아냈다.
매봉산에서 10년 넘게 배추를 기르는 최모(59) 씨는 "이달 중순까지 비가 세차게 내린 뒤로 날씨가 더워지면서 배추가 물을 잔뜩 빨아서 무름병이 생기고 있다"며 "지난달까지만 해도 작황이 좋을 줄 알았는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은 더운 한낮에 주민끼리 마을회관에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해가 기우는 오후에 다시 농기구를 들고 밭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창원시 의창구 북면 중촌 마을회관에는 이날 오전 11시께부터 농민 예닐곱명이 농사를 중단하고 더위를 시키고 있었다.
인근 밭에서 고추와 콩을 기른다는 윤창순(80) 씨는 "새벽 5시에 나와서 일하고 더운 시간을 피해 마을 회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며 "더위가 조금 가라앉는 오후 5시께 다시 밭으로 간다"고 말했다.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의 한 경로당에서는 집에서 막 점심을 먹고 돌아온 어르신들이 에어컨 앞에 앉아 연신 부채질하고 있었다.
주위엔 농경지가 넓게 뻗어있었지만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지춘자(84) 씨는 "밖에 잠깐 나갔다 왔는데도 더워서 혼이 났다"면서 "낮에는 일도 못 하고 꼼짝없이 경로당 안에서만 지내야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경기 평택시 팽성읍 객사4리 무더위쉼터인 경로당에는 어르신 12명이 모여 윷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흐를 정도로 더운 날씨지만 어르신들은 이웃과 경로당에 둘러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피서 방법 중에 으뜸이라고 입을 모았다.



안성시 서운면에서 복숭아 과수원과 논 텃밭을 관리하는 농민 A(74)씨는 안방 선풍기 앞에 앉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고 있었다.
A씨는 새벽 5시 반부터 7시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과수원과 논, 텃밭을 돌아본 뒤 낮 동안은 집 안에 머무른다.
A씨는 "요즘엔 혹여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낮에는 밭에 가지 않는다"며 "새벽에 일찍 농사일을 보고 하루 종일 집에서 더위를 피하는 게 일상"이라고 전했다.
전북 진안군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임모(65) 씨도 이날 오전 10시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대피'하다시피 들어왔다.
해가 중천으로 향할수록 등이 뜨거워져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온도가 오르는 데다 숨이 막힐 정도로 공기기 습해 자칫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고추 수확기는 아니더라도 1주일에 한 번 농약도 쳐야 하고 잡초도 수시로 제거해야 하기에 늘 사람 손이 필요하다.
임씨는 "요즘 뉴스를 보니까 밭일하다가 돌아가신 분이 많더라"라며 "이런 날에 일을 하면 갑자기 어지러울 때도 많은데, 특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31일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간 온열질환자가 255명이 발생했고,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7명에 이른다.
지난 28∼29일에는 밀양시와 남해군에서는 농사 일을 하던 2명이 숨진 바 있다.
경남도는 두 사람의 사인을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으로 분류했다.
질병관리청은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건강 수칙으로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더운 시간대에는 야외작업과 운동 등을 자제하고 시원한 곳에 머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양지웅 임채두 최해민 이성민 정종호 기자)
jjh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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