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피스킨병 첫 신고 수의사 "농장은 제 직장…더는 피해 없기를"
작성일 2023-10-24 07:31:26 | 조회 27
럼피스킨병 첫 신고 수의사 "농장은 제 직장…더는 피해 없기를"
"소쇠파리구더기증 등과 비슷…의심 소 전신에서 혹 발견돼 신고"
방역 관계자 "이미 확산됐을 수 있는 상황에서 빠른 방역 계기 마련"



(서산=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축산농장은 제 직장이나 마찬가지라, 농장이 피해를 보면 저도 타격을 입는 거죠."
전국으로 확산 중인 소 럼피스킨(Lumpy Skin·괴상피부)병을 충남 서산에서 처음으로 신고한 20여년 경력의 수의사 정재관 원장은 2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같이 말하며 현재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현재 집에서 격리 중이다.
정 원장이 부석면 지산리 한우농장에서 진료 의뢰를 받은 것은 지난 19일 점심때.
'사료를 잘 먹지 않는다'는 소가 고열 증세를 보여 청진을 하기 위해 몸에 손을 대는 순간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혹들이 울퉁불퉁 만져졌다.
이때까지는 정 원장도 럼피스킨병을 의심하지 않았다.
유충이 피부를 뚫고 나오는 모낭충증이나 소쇠파리구더기증도 비슷한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옆칸에 있는 소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도 온몸에 혹이 나 있었다.



정 원장은 "소쇠파리구더기증 등은 주로 등 쪽에 상처를 내는데, 그 소에서는 몸부터 배를 거쳐 다리까지 혹이 보였다"며 "최초 진료한 소에서만 혹이 만져졌으면 모르겠는데, 옆칸 소까지 그러니 아무래도 럼피스킨병 같아 시 가축방역팀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럼피스킨병이 유럽, 중국, 대만을 거쳐 동진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아직 국내에서 발생한 사례가 없어 솔직히 확신하기는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학에 다닐 때 럼피스킨병에 대해 배웠고, 지난해 우병학회 세미나에서도 이 병에 대한 강의를 들은 게 빠른 판단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같은 날 오후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정밀검사를 위해 의심 증상 소들의 가검물을 채취하는 것까지 도와주고는 곧바로 열흘간 격리됐다.
정 원장은 "그동안 2박3일 이상 쉬어본 적 없었기에 몸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얼마나 더 확산할지 걱정돼 마음은 매우 불편하다"며 "최대한 빨리 상황이 종식돼 농가와 우리 수의사들 모두 피해가 적기를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의 신고를 시작으로 23일까지 전국 14개 농장에서 럼피스킨병이 확인됐다.
서산에서는 반경 1㎞ 이내에 있는 6개 농장에서 발생해, 383마리가 살처분됐다. 많게는 한 곳에서 145마리(젖소)를 살처분하기도 했다.
한 방역 관계자는 "이미 럼피스킨병 바이러스가 확산한 가운데 자칫 다른 질병으로 여기고 넘어갔을 수도 있던 것을 정 원장이 날카롭게 분석해 신고함으로써 빨리 백신접종을 비롯한 방역에 나설 수 있게 돼 어찌 보면 천만다행"이라고 평가했다.


cob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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