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안하고 출산하면 불경한 일?…비혼출산도 고려해야"
작성일 2023-08-04 08:02:43 | 조회 37
"결혼 안하고 출산하면 불경한 일?…비혼출산도 고려해야"
칠레·멕시코 혼외출생률 70%, OECD 평균 41.9%…한국은 2.5%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가 쓴 '가족 각본'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못하는 것이니…."
고전 소설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전 국민이 다 아는 홍길동의 한탄이다. 길동은 이조판서의 서얼(庶孼)로 아버지를 '대감'이라 불렀다. 서얼은 양반과 양인 첩의 자식인 서자, 양반과 천민 첩의 자식인 얼자를 통칭하는 말이다.
홍길동은 결혼제도 바깥에서 태어났다. 조선조는 법적으로 중혼(重婚)이 금지됐다. 축첩제(蓄妾制)가 존재해 사실상 일부다처제였으나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제를 고수했다.
처는 한명이지만 첩은 여럿 둘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서얼의 수가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

안동 권씨 족보와 호적을 통해 자손의 신분을 확인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안동 권씨 18~29세손 중 결혼한 남자 구성원 450명 중 서자가 28%였다. 얼자의 경우 족보나 호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서자도 누락됐을 공산이 커 실제 서얼 수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8~19세기 서얼의 수는 적자를 넘어섰을 것으로 여겨진다.
서얼은 길동처럼 가정 내에서뿐 아니라 가족 바깥에서도 차별당했다. '서얼금고법'(庶孼禁錮法)이 있어 관직 진출도 금지됐다.
일제 강점기 때는 법적 절차를 따라야 결혼이 인정됐고,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는 '사생아'로 간주했다. 서자나 사생아는 1958년 민법이 제정되면서 없어졌으나 '혼인 중의 출생자'와 '혼인외의 출생자'를 구분하는 개념이 생겼다.

조선조부터 비혼 출산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출산의 기반은 결혼이어야만 했다. 수백 년이 흘렀지만, 이 같은 풍토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결혼제도 밖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혼외 출생률은 2.5%. 2002년 1.4%인 것에 견줘 1.1%포인트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이는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칠레와 멕시코는 70%가 넘고, 아이슬란드와 프랑스는 60%대, 노르웨이·스웨덴·네덜란드는 50%대다. OECD 회원국 평균도 41.9%에 달한다. 한국과 유일하게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는 나라는 일본(2.4%)뿐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도 누군가 '혼외자식'이라고 하면 결혼 상대로 거부감을 갖는다.
2021년 '다양한 가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미혼부·모 가족의 자녀'를 본인이나 자녀의 결혼 상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람은 59.5%에 불과했다. '비혼동거 가족의 자녀'에 대한 태도는 더 부정적이어서, 본인이나 자식의 결혼 상대로 이들을 받아들인다는 사람은 45.5%였다. 10명 중 네다섯 명 정도만 비혼동거 가족의 자녀를 본인이나 자식의 결혼 상대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는 책 '가족 각본'에서 "출산이 결혼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정상이라는 관념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사람을 적법과 불법으로 구분하며 생애의 시작부터 불평등을 만든다"며 획일적인 '결혼=가족'이라는 우리 사회의 공고한 '항등식'을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비혼 출산이 높은 나라는 출생률도 높은 편이다. 2020년 OECD 회원국 평균 혼외출산율이 41.9%인데, 이들 국가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평균은 1.56명이다.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세계 최저다.
김 교수는 "결혼과 출산의 절대 공식이 허물어진 나라에서 출생률이 높은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들 나라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든 평등한 삶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왔다는 뜻은 아닐까? 결혼으로 쌓아 올린 담벼락을 내리고 다양한 출생을 포용하려 애쓴 변화를 두고, 불경하고 문란하다고 치부하는 오류를 우리 사회가 범해온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라고 말한다.

책은 이 밖에도 동성 결혼과 동성 커플이 키우는 아이 문제, 여성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는 문화 등을 조명하면서 가족제도가 궁극적으로 가부장제가 초래한 성별 위계와 분업, 불평등 문제 등과 긴밀히 연동돼 있음을 밝힌다.
김 교수는 "한부모가족, 입양가족, 재혼가족, 이주배경가족, 조손가족, 비혼가족, 동성커플가족, 트랜스젠더가족 등 모든 가족은 가족의 '위기'나 '해체' 혹은 '붕괴'의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양식"이라고 강조한다.
창비. 248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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