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청소년 안전우려 커져…행안부 30억 긴급 지원(종합2보)
작성일 2023-08-03 19:35:32 | 조회 69
잼버리 청소년 안전우려 커져…행안부 30억 긴급 지원(종합2보)
연일 가마솥더위에 온열질환자 속출…개영식에서는 무더기 탈진
조직위 준비 상황 태부족…"중증 환자 없다"는 안일한 인식 빈축
미·영 '한국 당국과 소통중' 입장 밝혀



(부안·서울=연합뉴스) 정경재 계승현 기자 = "이쯤 되면 잼버리가 아니라 생존 체험 아닌가요?"
우수한 한국 문화와 자연환경을 세계 속에 알리겠다며 유치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8월 극심한 폭염에 비상이 걸렸다.
행정안전부가 3일 오후 폭염 대응을 위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단계를 사상 처음으로 2단계로 격상한 가운데, 잼버리 행사장에서도 35도를 웃도는 가마솥더위에 연일 온열질환자가 속출하자 대회 일정을 축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영국, 미국 등 대규모로 대원을 파견한 참가국들도 "현장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우려를 나타내는 분위기다.
3일 대회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열린 개영식에서 139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108명은 온열질환자로 파악됐다. 개영식이 늦은 오후에 열렸음에도 한낮 뜨거운 햇볕에 지친 참가자들이 공연 도중 무더기로 어지럼증을 호소한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119구급대원은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이 쓰러져 비상이 걸렸다"며 "차량 30대를 배치했는데 환자가 너무 많아서 타지역 구급대를 급하게 추가로 배치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잼버리소방서는 개영식이 열린 하루 동안 구급 출동 304건, 구조 1건, 응급처치 18건을 처리했다.
경찰 관계자 또한 "일부 참가자는 (사람들이 쓰러지자) 울면서 집에 전화를 걸었고, 외부 병원으로 이송된 스카우트 대원도 있었다"고 밝혔다.



잼버리가 열리는 야영장은 새만금 매립 당시부터 농어촌 용지로 지정된 곳이어서 물 빠짐이 용이하지 않은 데다, 숲이나 나무 등 그늘을 만드는 구조물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바닷가와 인접해 있지만, 한낮 동안 데워진 열기로 밤에도 열대야가 나타나는 일이 잦아 야영 활동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더구나 지난달 쏟아진 기록적인 장맛비로 생긴 물구덩이가 한낮 더위에 데워져 야영장은 흡사 한증막을 떠올리게 한다는 경험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쏟아졌다.
무덥고 습한 날씨에 창궐한 모기떼 등 각종 벌레에게 물려 병원을 찾는 대원들도 속속 집계되고 있어 대회 내내 해충 피해 또한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예견된 사고에도 조직위의 준비 상황은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4만3천여명의 참가 인원을 고려할 때 턱없이 부족한 50개 병상으로 대회를 시작했고, 그나마 내놓은 폭염 대책도 덩굴 터널과 수도 시설에 불과했다. 이미 전날 개영식에서만 온열질환자가 108명 발생해 70개 수준인 병상 수를 훌쩍 뛰어넘어 환자가 제대로 몸을 뉠 수 없는 상황이다.
화장실과 샤워실, 탈의실 수도 모자란 데다, 일부 시설은 천으로만 살짝 가려놓은 수준이어서 대원들이 이용을 꺼린다는 참가자 학부모의 목소리도 있다.
행사장 내 편의점에서는 폭염을 틈타 시중보다 비싼 가격에 얼음을 판매한다는 목소리도 있고, 대원들에게 지급된 달걀 등 식재료는 무더위에 상하거나 곰팡이가 피어 먹을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조직위 관계자는 "식약처와 함께 식품 위생을 확인하고, 편의점 폭리에 관해서는 조사를 거쳐 그런 일이 없도록 조처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 청소년을 파견한 외국 정부들은 청소년들의 안전 문제와 관련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영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영국 스카우트와 한국 정부 당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라며 "잼버리 대회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고 주한 영국대사관이 전했다. 이 대변인은 대사관 영사 직원들이 영국 참가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상주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영국은 이번 행사에 단일 국가 중 가장 많은 약 4천500명의 청소년을 파견했다.
주한미국대사관도 "이번 행사와 관련한 상호 우려 사항에 대해 한국 정부와 직접 소통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1천여명이 참가했다.
다만 아직까지 대원이 철수한 국가는 없다.
정부와 조직위는 부랴부랴 추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조직위는 "큰 문제 없다", "중증 환자는 없다"라는 말만 거듭해 현장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는데, 청소년들의 SNS상 증언과 학부모들의 불만 등이 보도되자 정부는 의료인력, 냉방시설 확충 대책을 서둘러 내놨다.
한덕수 총리는 조직위 공동위원장인 김현숙 여가부 장관에게 대회가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면서 전 대원의 안전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에는 현장에 그늘막과 샤워시설 등 편의시설을 증설하기 위한 공병대를 지원하고 응급상황 대응능력 강화를 위한 군의관을 신속하게 파견하라고 했다.
국방부는 오후 3시 현재 군의관과 간호장교, 응급구조사 등 10여명을 잼버리대회 현장에 파견했으며, 다음날까지 30여명을 추가로 지원할 예정이다.
잼버리 공동 조직위원장 가운데 한 명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날 잼버리 현장을 찾아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행사장 내 폭염 저감시설 추가 설치, 폭염 예방물품 지원을 위해 재난안전특별교부세 30억원을 전라북도에 즉시 교부하겠다고 밝혔다.
전북도 소방본부는 폭염 취약 시간인 오전 10시∼오후 4시 환자 이송이 빈번할 것으로 보고 구급차를 기존 30대에서 36대로 늘려 운행하기로 했다.
지역 노동·환경단체는 참가자 안전을 위협하는 대회 일정을 축소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이날 성명에서 "여러 단체와 전문가가 새만금 야영장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일찍이 경고했다"며 "더 큰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대회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 전북녹색연합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폭염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4만3천여명의 청소년과 자원봉사자, 대회 관계자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대회 강행은 너무나도 무모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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