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에 맞서다]⑪ 파격적 '주거 지원', 학교를 살리고 마을을 살리다
작성일 2023-07-24 08:37:14 | 조회 55
[지방소멸에 맞서다]⑪ 파격적 '주거 지원', 학교를 살리고 마을을 살리다
'전학 오면 집 공짜' 공공임대사업 후 괴산 백봉초 학생 수 3배 껑충
'제비마을' 입주 경쟁률 17대 1…"마을에 아기 울음소리 들리는 기적"
학부모들, 재능기부로 '품앗이 교육'…"일자리도 늘려 마을 매력 높여야죠"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괴산=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시골 마을의 고령화가 심각하다. 동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다. 아이가 없으면 학교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학교가 없는 곳에는 아이를 둔 젊은 부부가 정착을 꺼린다.
소멸 위기에 직면한 시골 마을의 현주소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제비마을도 그랬다. 이 마을에서 80년간 '교육의 산실'로 자리를 지켜온 백봉초등학교 학생 수는 수년 전 16명까지 줄었다. 유치원생까지 포함한 숫자다.
초등학생 기준 20명 이하 상태가 3년간 이어진 학교는 통폐합 대상이 된다.
이런 백봉초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대부분 백봉초를 나온 주민들을 중심으로 학교, 군청이 뭉쳤다.
그리고 지금 백봉초 학생 수는 59명에 달해 통폐합 위기를 완전히 벗어났다.
이들이 만들어낸 기적 뒤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 "백봉초로 오면 집이 공짜"
지난 17일 찾은 '제비마을'은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마을 곳곳에 둥지를 틀고 바삐 날아다니는 제비들의 모습이 마치 커다란 새 우리를 방불케 했다.
이곳은 예로부터 주민들이 정이 많고 착해서, 제비들이 몰려오면 겨울에도 떠나지 않고 집에서 살았다고 해 제비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주민들의 넘쳐나는 인정만큼이나 마을이 자리한 위치도 좋았다.
괴산 읍내와 청주, 증평으로 이어지는 부흥사거리를 끼고 있어 해방 전부터 각종 기관이 자리할 정도로 번성했다.
이 때문에 1943년 근처 백봉리에 문을 열었던 백봉초도 1955년에 이 마을로 옮겨왔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백봉리도 피하기 어려웠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인구가 계속 줄자 마을에 자리했던 기관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축소됐다.
한때 17학급까지 있었던 백봉초는 2000년대부터 한 학년에 한 학급 규모로 줄었다. 급기야 2018년 백봉초의 입학생은 단 한 명에 그쳤다. 유치원생을 포함해도 전교생은 16명에 불과했다.
학부모 60%가 동의하면 백봉초는 폐교되고, 아이들은 스쿨버스를 타고 10∼15분 걸리는 청천초와 문광초로 전학을 가야 했다.
이때 제비마을 부흥권역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던 한석호(64) 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4대째 이 마을에 살고 있는 한씨는 본인은 물론 선친과 4명의 자녀 모두 백봉초를 졸업했다. 그래서 더욱 백봉초가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백봉초로 오면 집을 공짜로 주자'는 것이었다.
한씨는 "마을 주민을 늘리는 길은 외지인들에게 집을 공짜로 주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처음엔 사람들이 반신반의했지만, 너무 절박했기에 주민·동문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설득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폐교 문제로 마을이 떠들썩하던 그해 농림축산식품부와 군청은 이곳을 체험관광마을로 만드는 '창조적 마을 만들기 주민공모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에겐 창조적 마을을 만드는 일보다 백봉초 폐교를 막는 게 시급했다.
한씨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창조적 마을 사업 일부를 취소해 절약한 돈과 괴산군의 추가 지원금을 더해 백봉초 전·입학 가정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짓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행복나눔 제비둥지' 사업을 통해 전국에서 14가구가 백봉초로 왔다.
그 덕분에 6년이 지난 지금 백봉초 전교생은 유치원까지 합쳐 59명까지 늘어났다.
"새로 날아온 '제비들'이 떠나지 않고 마을에 계속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임대주택 이름도 '제비둥지'라고 지었어요. 이곳으로 와 막내가 태어난 집도 여럿이죠. 아주 오랜만에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퍼지는 기적이 이뤄졌죠."

◇ "아이들이 행복하니 나도 행복"
마을 중앙에 위치한 행복나눔 제비둥지는 연립주택 형태로 총 14가구이다.
임대료는 공짜와 다름없다.
59.4㎡(18평), 69.3㎡(21평) 면적에 따라 각각 월 5만원, 9만원에 불과하다. 보증금도 없다. 일단 입주하면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기대 이상이었다.
첫해 6가구 모집에 20가구가 지원했다. 다음 해는 입소문이 나 6가구 추가 모집에 100가구가 신청했다. 무려 17대 1의 경쟁률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주에 성공한 가족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제비둥지 앞에서 만난 신승용(40) 씨는 '제비마을 전도사'를 자청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아내, 두 자녀와 함께 부산에서 이곳으로 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괴산에 오는 건 모험이었어요. 막연히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에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TV 방송을 통해 우연히 제비둥지를 알게 됐죠. 마을 전체가 함께 아이들을 키워나간다는 마인드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제비둥지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동네 앞 한적한 2차선 도로만 건너면 바로 백봉초다. 제비둥지에 사는 아이들 걸음으로 5분이면 도착할 거리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죠. 8살 첫째는 초등학교 1학년, 6살 둘째는 병설 유치원에 다니는데, 아침이 되면 아이들이 학교에 빨리 가겠다고 아우성이예요. 도시에서는 결코 생각지 못했던 모습이죠."

첫째인 유나 양도 한마디 거들었다.
"동네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학교가 가까워서 너무 좋아요. 운동장에 있는 '방방'(트램펄린)도 신나고 타고 온종일 밖에서 뛰어노는 게 최고로 신나요."
엄지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는 아이의 얼굴에서는 함박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문화가정을 꾸린 김현주(28)씨 역시 두 자녀를 위해 이곳을 택했다.
김씨는 "아무래도 다문화가정이다 보니, 도시보단 학생 수가 적은 시골 학교가 적응도 쉽고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줄 것이라 생각해 이주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적응하며 행복해하는 아이들 모습에 아주 만족스럽다"며 "나 역시 시끄럽고 사람이 많은 도시보다 조용하고 인심도 좋은 이곳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 "온 마을이 아이들 함께 키우죠"
제비마을은 주민 전체가 함께 아이들을 기른다. '보육 품앗이'라고 할 수 있다.
백봉초는 방과후 수업시간에 영어, 난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코딩, 놀이체육 등을 가르친다.
면 단위 학교보다 더 다양하다. 제비둥지에 사는 학부모가 재능기부 형식의 강사로 나서 준 덕분이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엄마는 피아노 강사로, 지휘자로 일한 경력이 있는 아빠는 합창단 단장으로 아이들을 지도한다.
지역아동센터가 없어 마을주민과 학부모가 함께 '돌봄교실'도 운영한다. 마을 자율방범대 건물을 빌려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아이들을 보살핀다.

올해는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을 통해 학교 옆 민원봉사실 2층에 돌봄센터와 작은 도서관, 실내 놀이터 등이 새롭게 생긴다.
학부모회는 매년 텃밭을 가꿔 거둔 수익을 학교에 기부한다. 이 돈으로 학교 운동장에 밧줄다리, 트램펄린, 정글짐을 설치했다.
백봉초 총동문회와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땅을 사고 군청에 기부채납해 아이들을 위한 체육관도 세웠다.
최인숙 백봉초 교장은 "체험학습, 동아리 활동, 마을축제 등 모든 활동을 주민, 학부모들과 함께하고 있다"며 "학교가 지역의 구심점이자,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됐다"고 전했다.

◇ "일자리도 늘려 마을 매력 키워야죠"
괴산군은 '행복나눔 제비둥지' 사업의 성공을 발판 삼아 임대주택 조성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행복보금자리와 청년농촌보금자리 조성 사업을 통해 모두 84가구, 285명이 괴산에 둥지를 트는 성과를 거뒀다.
수도권과 가깝다는 이점 등을 통해 은퇴자, 귀농·귀촌 희망자, 청년 창업자 등을 끌어들이겠다는 야심이다.
송인헌 괴산군수는 "주거 플랫폼, 귀농귀촌 주택단지, 청년 임대주택, 지역활력타운 등을 통해 올해는 203가구, 810여 명의 인구유입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제비둥지는 물론 전국 모든 지자체의 공공임대주택 사업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다.
아이 교육 등 다양한 이유로 농촌의 작은 학교에 눈을 돌리는 학부모들에게 헐값의 임대주택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직장 문제로 도시로 돌아가거나, 마을에 적응하지 못해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면 마을을 떠날 가능성도 있다.
성공담을 이어가는 제비둥지도 그동안 아이의 졸업과 함께 1가구가 떠났고, 4가구는 개인 사유로 이사했다.
지속적인 관리와 문제점 개선이 없다면 인구유입 효과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괴산군은 거주를 중도 포기하는 가족이 나오면 불만 조사를 통해 부족한 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집이 좁다는 의견이 많아 새로 건립하는 임대주택은 82.5㎡(25평) 이상으로 확대하고, 거주 기간도 아이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최예지 괴산군 농업정책과 보금자리팀 주무관은 "무엇보다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일자리 문제가 제일 중요할 것"이라며 "일자리 대책과 함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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