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파격확대 배경은…국내 입학정원, 주요국 3분의 1 불과
독일·영국·일본 등 선진국, 의대정원 파격적으로 늘려나가
응급실·외과·소아과 등 '필수의료 인프라' 붕괴도 파격 확대 요구
보건사회연구원 "이대로면 2035년 2만7천명 의사 부족 사태"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정부가 2025년 대학입시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1천명 이상 늘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확충안을 내놓으려는 것은 고령화 등으로 갈수록 의사 수요가 늘고 있지만, 현재 의과대학 입학 정원은 주요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현실 때문이다.
응급실, 외과, 소아과 등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심각해진 데다, 지방의료 인프라도 붕괴 가능성에 직면하면서 의대 정원 파격 확대라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 18년째 못 늘린 의대 입학 정원, 주요국의 30~40% 불과
15일 보건복지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한국(2020년 기준 5천184만명)과 인구가 가장 비슷한 영국(6천708만명)은 2020년에 의대 42곳에서 모두 8천639명을 뽑았다.
2006년 이후 3천58명으로 묶인 국내 의대 정원의 3배 가까이 된다.
우리보다 인구가 다소 많은 독일(8천317만명)의 경우 같은 해 39개 공립 의과대학의 총정원이 9천458명에 달한다.
독일에서 가장 많은 입학생을 받은 곳은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으로, 그해 입학 정원이 527명이었다. 독일 대학 한 곳의 입학 정원이 우리의 20%에 맞먹는 수준이다.
우리와 인구 변화 패턴이 비슷한 일본(1억2천626만명)은 같은 학년도에 81개 의과대학에서 총 9천330명을 받았다. 학교마다 대체로 100∼120명씩 고르게 뽑았다.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호주가 총 3천845명(21개 대학 기준)을 뽑아 우리와 가장 비슷했다.
다만, 호주 인구(2천566만명)는 우리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내 의대 입학 정원이 주요 국가들에 비해 태부족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고령화 맞은 선진국들, 의대 정원 파격적으로 늘려나가
지금도 우리나라보다 의대 입학 정원이 훨씬 많지만, 선진국들은 이를 더 파격적으로 늘려나가는 모습이다.
고령화 등으로 의료 서비스가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독일 카를 라우터바흐 보건장관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의대생을 연간 5천명씩 늘릴 것"이라며 "우리는 즉시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베이비붐 세대가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독일의 의대 입학 정원은 1만5천명가량이 돼 우리나라의 무려 5배에 달하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독일의 2021년 현재 인구 1천명당 의사수는 4.5명이다.
오스트리아(2022년 기준 5.5명), 노르웨이(2021년 기준 5.2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데, 한국(2021년 기준 2.6명)의 2배 가까이 되는데도 의사를 훨씬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영국도 고령화 등에 대비해 2037년까지 의사 6만명을 확충한다는 목표 아래 2031년까지 의대 정원을 1만5천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일본도 고령화 추세에 맞춰 의대 정원을 지속해서 늘려나가고 있다.
◇ '응급실 뺑뺑이'에 '소아과 오픈런'…"필수의료 인프라 붕괴에 정원 확대 불가피"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의 파격적인 확대에 나서는 것은 이대로 가면 응급실, 외과, 소아과, 지방의료 등 필수의료 인프라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강원도 속초의료원 응급실은 올해 1월부터 주 4일 단축 운영하는 등 파행을 겪어야 했다. 전문의 5명 가운데 3명이 잇따라 퇴사해서다.
이후 급히 인력을 채용하려 했으나 응시자가 없어 어려움은 계속됐다.
그러다 전문의 연봉을 4억원대로 올리고, 응급의학과 전공의 4년 수료자까지로 응시 자격을 확대하는 등의 조처를 통해 부족한 의사 수를 메울 수 있었다.
이 병원 응급실은 이런 진통을 겪은 끝에 약 넉 달 만에 정상 가동할 수 있었다.
응급실, 중환자실 의료진 부족 등으로 응급 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찾아 전전하다가 안타깝게 숨지는 일도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 대구에서는 10대 청소년이 4층 건물에서 떨어진 후 2시간 넘게 응급실을 찾아 전전하다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구급차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5월에는 경기 용인시에서 후진하던 차량에 치인 70대 노인이 구급차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고 접수 10분 만에 구급대원들이 A씨를 구조해 인근 대형병원 12곳에 A씨를 받아줄 수 있는지 문의했으나, 중환자 병상 부족 혹은 응급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잇따른 소아과 폐업으로 소아환자와 보호자들이 병원 문이 열리기 전부터 길게 대기하는 이른바 '오픈런'도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이처럼 필수의료 분야에서 인력 부족으로 시스템 붕괴가 일어나면서 부족한 의사 수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수가 인상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우선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한 의사 수부터 늘려야 이후의 대책들도 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 등으로 2050년 기준 약 2만2천 명 이상의 의사가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외과, 신경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 고령층의 의료 수요가 집중되는 필수의료 부문에 추가로 필요한 의사가 많았다.
외과는 6천962명, 신경과 1천269명, 신경외과 1천725명, 흉부외과 1천77명의 의사가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의사 1인당 업무량이 2019년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2030년 1만4천334명, 2035년 2만7천232명의 의사 공급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soho@yna.co.kr
(끝)
독일·영국·일본 등 선진국, 의대정원 파격적으로 늘려나가
응급실·외과·소아과 등 '필수의료 인프라' 붕괴도 파격 확대 요구
보건사회연구원 "이대로면 2035년 2만7천명 의사 부족 사태"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정부가 2025년 대학입시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1천명 이상 늘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확충안을 내놓으려는 것은 고령화 등으로 갈수록 의사 수요가 늘고 있지만, 현재 의과대학 입학 정원은 주요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현실 때문이다.
응급실, 외과, 소아과 등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심각해진 데다, 지방의료 인프라도 붕괴 가능성에 직면하면서 의대 정원 파격 확대라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 18년째 못 늘린 의대 입학 정원, 주요국의 30~40% 불과
15일 보건복지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한국(2020년 기준 5천184만명)과 인구가 가장 비슷한 영국(6천708만명)은 2020년에 의대 42곳에서 모두 8천639명을 뽑았다.
2006년 이후 3천58명으로 묶인 국내 의대 정원의 3배 가까이 된다.
우리보다 인구가 다소 많은 독일(8천317만명)의 경우 같은 해 39개 공립 의과대학의 총정원이 9천458명에 달한다.
독일에서 가장 많은 입학생을 받은 곳은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으로, 그해 입학 정원이 527명이었다. 독일 대학 한 곳의 입학 정원이 우리의 20%에 맞먹는 수준이다.
우리와 인구 변화 패턴이 비슷한 일본(1억2천626만명)은 같은 학년도에 81개 의과대학에서 총 9천330명을 받았다. 학교마다 대체로 100∼120명씩 고르게 뽑았다.
다만, 호주 인구(2천566만명)는 우리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내 의대 입학 정원이 주요 국가들에 비해 태부족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고령화 맞은 선진국들, 의대 정원 파격적으로 늘려나가
지금도 우리나라보다 의대 입학 정원이 훨씬 많지만, 선진국들은 이를 더 파격적으로 늘려나가는 모습이다.
고령화 등으로 의료 서비스가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독일 카를 라우터바흐 보건장관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의대생을 연간 5천명씩 늘릴 것"이라며 "우리는 즉시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베이비붐 세대가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독일의 의대 입학 정원은 1만5천명가량이 돼 우리나라의 무려 5배에 달하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독일의 2021년 현재 인구 1천명당 의사수는 4.5명이다.
오스트리아(2022년 기준 5.5명), 노르웨이(2021년 기준 5.2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데, 한국(2021년 기준 2.6명)의 2배 가까이 되는데도 의사를 훨씬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영국도 고령화 등에 대비해 2037년까지 의사 6만명을 확충한다는 목표 아래 2031년까지 의대 정원을 1만5천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일본도 고령화 추세에 맞춰 의대 정원을 지속해서 늘려나가고 있다.
◇ '응급실 뺑뺑이'에 '소아과 오픈런'…"필수의료 인프라 붕괴에 정원 확대 불가피"
강원도 속초의료원 응급실은 올해 1월부터 주 4일 단축 운영하는 등 파행을 겪어야 했다. 전문의 5명 가운데 3명이 잇따라 퇴사해서다.
이후 급히 인력을 채용하려 했으나 응시자가 없어 어려움은 계속됐다.
그러다 전문의 연봉을 4억원대로 올리고, 응급의학과 전공의 4년 수료자까지로 응시 자격을 확대하는 등의 조처를 통해 부족한 의사 수를 메울 수 있었다.
이 병원 응급실은 이런 진통을 겪은 끝에 약 넉 달 만에 정상 가동할 수 있었다.
응급실, 중환자실 의료진 부족 등으로 응급 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찾아 전전하다가 안타깝게 숨지는 일도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 대구에서는 10대 청소년이 4층 건물에서 떨어진 후 2시간 넘게 응급실을 찾아 전전하다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구급차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5월에는 경기 용인시에서 후진하던 차량에 치인 70대 노인이 구급차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고 접수 10분 만에 구급대원들이 A씨를 구조해 인근 대형병원 12곳에 A씨를 받아줄 수 있는지 문의했으나, 중환자 병상 부족 혹은 응급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잇따른 소아과 폐업으로 소아환자와 보호자들이 병원 문이 열리기 전부터 길게 대기하는 이른바 '오픈런'도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이처럼 필수의료 분야에서 인력 부족으로 시스템 붕괴가 일어나면서 부족한 의사 수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수가 인상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우선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한 의사 수부터 늘려야 이후의 대책들도 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 등으로 2050년 기준 약 2만2천 명 이상의 의사가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외과, 신경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 고령층의 의료 수요가 집중되는 필수의료 부문에 추가로 필요한 의사가 많았다.
외과는 6천962명, 신경과 1천269명, 신경외과 1천725명, 흉부외과 1천77명의 의사가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의사 1인당 업무량이 2019년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2030년 1만4천334명, 2035년 2만7천232명의 의사 공급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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