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人] (39) '지역 음악가에 무대를' 오케스트라 창단·지휘 김지환교수
작성일 2023-10-08 10:31:28 | 조회 26
[대학人] (39) '지역 음악가에 무대를' 오케스트라 창단·지휘 김지환교수
연주 기회·양질의 공연 확산 위해 협동조합 형태로 출범
"연주자들 제대로 된 대가 받기를…도립교향악단 역할 기대"

[※ 편집자 주 =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 대학들은 존폐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학들은 학과 통폐합, 산학협력, 연구 특성화 등으로 위기에 맞서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지방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 구성원들을 캠퍼스에서 종종 만나곤 합니다. 연합뉴스는 도내 대학들과 함께 훌륭한 연구와 성과를 보여준 교수와 연구자, 또 학생들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연주하고 싶을 텐데, 전북에는 교향악단이 두 곳밖에 없습니다. 함께 무대에 설 기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북대학교 음악과 김지환 교수가 '오케스트라 판'을 창단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오케스트라 판의 음악감독 및 수석지휘자를 맡고 있다.
김 교수의 말처럼 전북에는 전주시와 군산시만 시립교향악단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두 곳 모두 다른 시·군을 돌며 공연하지 않기 때문에 연주자들이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도립교향악단도 없어 관객들 역시 공연을 즐길 기회가 적다.
김 교수는 "교향악단 운영에는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창단을 머뭇거리는 단체장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면서도 "그래도 양질의 음악을 공급하는 오케스트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조합원들을 모아 협동조합 형태로 창단했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창단에는 음악가들이 적절한 연주비를 받고, 시민들은 공연을 무료가 아닌 돈을 내고 관람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는 김 교수의 철학도 담겼다.
김 교수는 서울 등에서 지휘를 하다가 6년 전 전북대 교수로 임용돼 전주에 왔는데, 지역에선 특히나 연주자에게 돌아가는 돈이 적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연주자들은 십 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한 악기를 연습한 결과물을 수십 분 내로 응축해 공연하는데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대우를 받는다"며 "이런 분위기에선 음악가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예술공연은 무료라는 인식이 많아 사람들이 관람료에 인색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비싼 꽃을 사 가는 것은 꺼리지 않는다"며 "이런 분들에게 '꽃보다 티켓'이라고 말하고 싶다. 꽃을 사는 대신 티켓을 구매해달라"고 힘을 줬다.
그래서 김 교수는 오케스트라 판이 3차례의 공연을 하는 동안 단 한장의 초대권도 배포하지 않았다. 누구나 1만∼2만원가량의 비용을 내고 공연을 관람하도록 했다.
그렇게 모은 수익으로 오케스트라 판 조합원 40여명과 객원으로 참여한 연주자들은 풍족하지 않지만, 적정한 노동의 대가를 나눴다.

김 교수는 판소리의 고장 전북에서 클래식의 확산을 소망하기도 했다.
판소리나 농악 등 전통이 깃든 만큼 도내에서 국악과 관련한 행사나 공연이 많다. 하지만 클래식 전공자들도 곳곳에 있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클래식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위한 방법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오래간 진행 중인 '천원의 행복' 프로젝트를 예시로 들었다.
시민 누구나 단돈 천 원으로 유수의 공연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건데, 공연예술을 대중에게 널리 보급할 수 있고 대중들도 양질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전북은 적은 인구에 비해 유명한 성악가나 연구자들이 많다.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은 예향의 도시"라며 "공공지원에는 돈이 들겠지만, 문화예술 확산을 위해선 시민들이 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게, 또 연주자들이 자주 무대에 설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오케스트라 판은 11월 15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네 번째 공연을 연다.
지금껏 그래왔듯 베토벤과 차이콥스키 등 대중들에게 익숙한 거장들의 곡과 현대 작곡가의 곡을 적절히 섞은 음악을 관객들에게 들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다행히 매회 600석 중 400석이 찼지만, 공연이 다가올 때마다 김 교수는 오케스트라 판이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김 교수는 "서울의 오케스트라들처럼 큰 기업이 지원해주기를 바라지만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며 "매회 더 많은 새로운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아줬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그러면서 "연주 무대를 늘리고 싶은 지역 음악가들이 뭉쳤지만, 오케스트라 판은 더 많은 시민이 음악으로 감동했으면 하는 마음이 담겼다"며 "도립교향악단의 역할을 하는 연주단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때까지, 어려움이 있더라도 꿋꿋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가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wa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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