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학교 대신 농장으로…가난이 할퀸 라오스 아이들의 꿈
작성일 2023-10-01 12:40:14 | 조회 108
[르포] 학교 대신 농장으로…가난이 할퀸 라오스 아이들의 꿈
학업 그만두고 집안일하거나 범죄 빠지기도…고교 진학률 36%
밤에는 오토바이 폭주족…태국 합법화 이후 대마 재배 열풍


(비엔티안=연합뉴스) 안정훈 기자 = "친구들은 학교를 떠나면 마약 같은 범죄에 노출돼요. 위험성을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한 채로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청소년 활동가인 민따 시하짝(17)의 꿈은 변호사다. 불평등하고 가혹한 환경에 놓인 주변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다.
시하짝은 "가난해서 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일찍 결혼해 집안일을 하거나 직업학교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미용사나 재봉사가 된다"며 "상황이 어려우면 도둑질하면서 엇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칸타랏 초등학교에 시하짝을 비롯한 유니세프 청소년 활동가 여학생 5명이 찾아왔다. 뜨거운 햇살 속에서 자기소개를 마친 이들은 학생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등을 물었다.
친구들 눈치를 보던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군인이 돼서 마을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고 씩씩하게 말하는 아이에게 활동가들은 사탕을 나눠줬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학업의 끈을 놓지 말라는 격려는 덤이었다.
라오스에는 시하짝처럼 교육의 중요성과 마약의 위험성 등을 알리는 청소년 활동가가 269명 있다. 초등학교에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페이스북과 라디오 방송도 활용한다. 어른들의 틀에 박힌 말보다는 공감 가는 언어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핵심이다.
시하짝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이걸 알릴 수 있는 홍보활동을 하는 게 매우 큰 보람"이라며 웃었다.

그러나 활동가들의 노력에도 무상교육 기간이 지나면 학비 문제 등으로 더이상 교육받지 못하는 라오스 아이들이 적지 않다.
라오스 학제는 초등학교 5년, 한국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전기 중등교육 4년, 고등학교 격인 후기 중등교육 3년으로 구성된다. 무상교육인 전기 중등교육이 끝나면 많은 아이가 교정을 떠나 농장이나 공장으로 향한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올해 기준 초등학교 진학률을 97.7%지만 전기 중등교육 진학률은 67.3%, 후기 중등교육은 36.2%에 그친다.
학교의 울타리를 떠난 아이들은 생계를 위해 일하거나 조혼으로 조기 출신하는 등 가혹한 현실에 내몰린다.
2017년 기준 15∼19세 여성 청소년 1천명당 83명이 출산을 경험했다. 일하는 5∼17세 아동청소년 중 95%는 학교를 그만뒀거나 아예 학교에 다녀본 적도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내년에 후기 중등교육에 진학하는 디나(12)는 "초등학교 친구 일부가 부모님 일을 도와줘야 해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학교에 같이 올라가지 못한 친구들은 대부분 소식이 끊겼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 소빠(13)는 "내 주변 10명 7명은 상위 학교로 가고 싶어 하지만 모두가 갈 수는 없다"며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찾는 친구도 있다"고 전했다.
각박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약물 남용 등 범죄의 그림자도 드리운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2019년 6월까지 18세 이하 청소년 1천204명이 고소·고발을 당했고 그중 189명이 구금이나 감금에 해당하는 처분을 받았다. 대부분 약물 남용이나 절도·폭주 등이다.
기자가 머문 라오스 남부 살라완주(州)에서는 밤이면 앳된 얼굴의 청소년들이 3∼4명씩 오토바이 한 대에 타고 질주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보통 10명 안팎이 무리지어 다니며 위협적으로 도로를 누볐다.

비엔티안에서 20년 거주한 교민은 수도 비엔티안뿐만 아니라 시골 마을에서도 알음알음 마약을 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교민 소개로 찾아간 비엔티안의 한 가게는 올해 초까지 문신을 새겨주면서 대마초도 판매했다고 한다. 인근 고등학교에서 약 1㎞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가게는 인터넷 카페로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내부에는 컴퓨터가 10여 대 놓여있었고. 중년 남성 2명이 담배를 피우면서 슬롯머신을 돌리고 있었다. 지금도 대마초를 판매하는지 확인하려고 카운터에 물었으나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동행한 교민은 "지난해 6월 태국에서 대마초가 합법화된 이후로 대마초를 기르는 가정이 늘었다"며 "일부 가라오케에서도 손쉽게 접할 수 있고 케타민 같은 마약은 외국에서도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고 말했다.
hu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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