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위 시체 실습실 눈앞에 생생…VR로 배우는 해부학
작성일 2023-10-01 10:38:47 | 조회 49
수술대 위 시체 실습실 눈앞에 생생…VR로 배우는 해부학
김도경 경희 의대 교수, 제자들과 제작…"현실적 콘텐츠 만들고 싶었다"
교육용 무료공유…"타 대학·기관 협력해 'K해부학' 플랫폼 구축하고파"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수술대 위 해부용 시체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들면 파란색 실습복을 입고 마스크를 낀 학생들이 보인다.
김도경(40) 경희대 의과대학 교수가 만든 가상현실(VR) 해부학 영상을 통해서다.
김 교수는 지난해부터 학생들과 직접 카메라로 해부학 수업 과정을 촬영하고 편집해 실습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영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긴 엄지 굽힘근 옆에는 깊은 손가락 굽힘근이 위치합니다. 이 두 근육을 양쪽으로 벌리면…."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면 시신의 손가락 근육 위에서 바삐 움직이는 학생들의 손이 눈 앞에 펼쳐진다.
최근 경희대 서울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해부학은 3차원 구조와 현장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3년 전 해부학 관련 VR 애플리케이션(앱)을 처음 발견한 뒤 곧바로 수업에 도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종 잘못된 정보나 실제 실습과는 괴리감이 큰 가상의 이미지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직접 콘텐츠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학생들에게 실습 전 충분히 동영상을 보고 오도록 하는데도 실제로 메스를 들면 피부 벗기는 데만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해요. 진짜 참고할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김 교수가 만든 콘텐츠는 경희대 의대 학생뿐 아니라 보건 계열 학과와 타 대학 학생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해부학 교육 목적으로 영상 사용을 요청하는 기관에는 콘텐츠를 무료로 공유하고 있다. 한국어와 영어 자막을 삽입해 해외에서도 교육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김 교수는 "저희는 본인이 직접 메스를 들고 해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시신 수가 부족해 그렇게 못하는 곳도 많다"며 "교수가 실습하고 학생은 참관만 하거나 실습실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점점 시신 기증자가 줄어들고 있기도 해요. 20년 뒤에는 기증자가 아무도 없을 수 있죠. 그러면 (해부학) 콘텐츠라도 구축이 돼 있어야 하니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요."
김 교수는 콘텐츠 제작에 학생들 도움을 받고는 있지만 준비 과정부터 대본과 영상 확인, 피드백, 편집에서 업로드까지 콘텐츠 제작의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
그는 "업무량이 이전의 5∼6배가 됐다"면서도 "학생들이 내는 보고서의 퀄리티가 확연히 좋아지는 걸 볼 때나 '얻어가는 게 많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면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 지었다.

김 교수의 목표는 다른 대학들과 협력하며 해부학계의 'K-콘텐츠'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저 혼자 힘으로 아주 고도화된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다른 대학 또는 기관들과 함께 콘텐츠를 구축해 하나의 단단한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 세계 어느 의과대·간호대·보건대에서도 '한국에서 만든 플랫폼에 들어가면 양질의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게 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stop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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