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치워라 그 선생" 악성 민원 시달려온 대전 교사 빈소
작성일 2023-09-08 16:34:14 | 조회 25
"당장 치워라 그 선생" 악성 민원 시달려온 대전 교사 빈소
아동학대 신고 이후 4년여간 심한 마음고생
학부모 "학생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하던 정직한 교사"로 기억



(대전=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학생들에게 옳고 그른 것을 가르치던 '진짜'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요."
8일 오전 악성 민원 등으로 괴로워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대전 한 초등학교 교사 A씨의 빈소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A씨를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선생님으로 기억했다.
유족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9년 12월 유성구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다가 한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를 당했다.
A씨 아동학대 혐의는 다음 해에 무혐의 처분으로 결론이 났지만, 4년여간 학부모와 학생으로부터 지속적인 악성 민원에 시달려왔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 유족 측 주장이다.
이날 A씨 빈소에는 2019년 당시 A씨가 담임교사로 있었던 같은 반 학부모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이 학부모들은 당시 A씨가 한 학부모로부터 고소를 당하자, 먼저 나서서 탄원서를 십시일반 모아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A씨에 대해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려 했던 분이고,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했던 정직하고 훌륭한 교사였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아이에게 정당하게 교육하던 모습이 정말 학대를 논할 정도의 일이었다면 같은 반 학부모들 모두가 탄원서를 쓰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선생님이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으면 다른 학교를 가셨을 텐데 올곧은 분이셔서 일부 학부모의 모멸감도 견뎌내며 끝까지 학교에 남아 계셨다"고 상기했다.
A씨 빈소에는 생전 A씨를 좋은 교사로 기억하던 학부모들과 동료 교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헌화를 마치고 나온 A씨의 동료 교사는 빈소를 떠나지 못한 채 근조화환 앞에서 크게 흐느끼며 울었다.
A씨가 교사로 첫 부임을 했던 2004년,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다는 동료 교사는 "힘들어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도 않고 늘 열심히 하는 예쁘고 착한 후배였다"고 기억했다.
그는 "나 또한 학부모로부터 고소 협박을 받으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휴직한 상태인데 후배 일이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아직도 현실을 믿을 수 없는 유족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A씨 어머니는 영정 사진을 보며 "이렇게 예쁜 네가…"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A씨의 시아버지는 "지난 4일 며느리로부터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 참석으로 가족 행사에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 마지막 통화였다"며 마음 아파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며 힘들어했던 A씨는 누구보다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교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하고 싶어 했다고 유족은 설명했다.
A씨 남편 B씨는 4년간 A씨가 받았던 모멸감과 스트레스에 대해서 털어놨다.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한 A씨는 당시 담임 업무에서 배제되고 체육이나 영어를 전담하는 업무로 담당이 바뀌었다.
남편 B씨에 따르면 A씨가 쓰던 교무실이 문제가 있던 학생 4명 중 한 명과 복도를 같이 공유했는데, 그 이유만으로 해당 학부모로부터 당장 자리를 옮기라는 민원이 제기된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코로나19 당시 등교 시간 교문 앞에서 마스크 착용을 지도했는데, 해당 학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아내를 보는 것을 못마땅해하며 '당장 치워라, 그 선생'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B씨는 "아내가 가르쳤던 학생의 누나가 아내의 체육 수업을 들었는데, 필기시험에서 저점이 나오니까 '보복을 하기 위해 점수를 이렇게 줬다'면서 또 해당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했다고 하더라"면서 "알고 보니 답안지가 백지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허탈해했다.
B씨에 따르면 A씨는 서이초 사건 이후 유독 더 힘들어했다.
B씨는 "새롭게 학교가 바뀌고 담임도 다시 맡으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지만 서이초 사건이 터진 뒤 옛날 생각이 나면서 다시 힘들어했다"며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희망을 품고 교권 관련 집회에 자주 참석해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더 낙담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 참석에 대한 교육부의 강경 조치로 부담감도 상당했다고 한다.
B씨는 "당시 교육부에서 참석하려는 교사들에게는 해임 또는 파면을 할 수 있다는 발표를 듣고, 아내가 본인이 파면을 당할 수도 있겠다며 굉장히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B씨는 아내가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했을 당시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해 더 힘들어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B씨는 "학교에서는 어떤 지원도 없이 '그냥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았을 걸 왜 일을 키웠느냐'는 식으로 오히려 아내의 잘못인 것처럼 방관했다"며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아내랑 둘이서 변호사를 수소문해 상담받고 알아서 법적 대응을 해야 했다. 동료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탄원서 덕분에 억울함을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오후 초등학교 교사 A씨는 대전 유성구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뒤인 지난 7일 숨졌다.
A씨의 발인은 오는 9일 오후 1시 30분, 장지는 대전 추모공원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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