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삶의 일부가 됐어요" 31년간 미용 봉사 세 자매
작성일 2023-10-07 10:30:54 | 조회 29
[#나눔동행] "삶의 일부가 됐어요" 31년간 미용 봉사 세 자매
가게 문 닫고 시간 맞춰 함께 봉사…목욕 봉사·음식 만들기도
"어르신들 기뻐하는 모습 보면 좋은 사람 된 기분…나 좋자고 하는 것"

(청주=연합뉴스) 이성민 기자 = "머리 자르랴 염색하랴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절 따라 이 동네에 들어온 동생들에게 괜히 미안했는데, 이젠 함께할 수 있어서 오히려 든든해요"



지난 5일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노인복지센터에서 만난 김경희(61)씨가 한 어르신의 머리 위로 바쁜 가위질을 하며 맑게 웃었다.
그의 왼편으론 동생 김은주(55)씨와 김은정(43)씨가 나란히 서서 다른 어르신들의 머리를 단장해주고 있었다.
세 자매가 노인복지센터 등에서 미용 봉사활동을 시작한 건 30년 전인 1993년.
그해 김은주씨가 언니와 함께 봉명동에 차린 미용실에 어느 날 손님으로 온 한 봉사단원이 미용 봉사를 제안했다고 한다.
김은주씨는 "처음엔 거절하기도 거북하고, 가게 이미지도 있어서 언니와 함께 갔는데, 나중엔 다른 동네에서 미용 학원에 다니던 동생도 따라 나오게 됐다"면서 "어르신들이 바뀐 모습에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어느 순간부터 점점 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옛날을 회상했다.



여자도 기술이 있어야 자립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 미용사가 된 세 자매는 지난 31년간 한 달에 한 번에서 네 번씩 봉사를 꾸준히 해왔다.
김은주씨와 김은정씨는 지역 봉사대의 추천으로 청주시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지역 경로당이나 복지센터에 나가면 한명이 보통 10명의 머리를, 직접 섭외해서 나가는 요양원에선 30명까지 혼자 해낸다고 한다.
힘들진 않냐는 질문에 김은주씨는 "요양원 어르신들은 밖에 잘나가지 못해 미용 봉사만 기다리는 분들도 있다"면서 "지난해 어깨를 수술해서 후유증으로 아직 통증이 있지만, 그만큼 좋아해 주시고 이젠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김경희씨는 "나이가 들어 눈도 침침하고 힘에 부치지만, 어르신들이 염색된 머리를 보고 '나 시집가도 되겠다'며 기뻐하거나 고맙다며 손잡아주실 때 힘든 게 싹 잊힌다"고 했다.



이들은 어르신들을 위해 목욕 봉사를 하거나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추석 전엔 지역 봉사대와 함께 독거노인 어르신들에게 삼계탕 250인분을 만들어 드렸다.
각자 일정이 있을 땐 따로라도 봉사를 나간다. 하지만 이날처럼 한 달에 한 번은 꼭 세 자매가 시간을 맞춰 함께 봉사한다고 했다.
이날은 반영구 샵을 운영하는 김은정씨가 언니들의 봉사 일정에 맞춰 세 시간 동안 예약을 받지 않고 나왔다.
늘 손님이 많다는 그는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를 받아 날카로워지게 되는데,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다시 원래 성격대로 '둥글둥글'해지는 것 같다"면서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결국엔 저 좋자고 가게도 뒤로하고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경희씨가 "저희도 나이를 조금 더 먹게 되면 누군가로부터 이런 봉사를 받게 될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빚지지 않으려고 조금씩이라도 해두는 거예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세 자매는 새로운 봉사를 또 계획하고 있다. 동사무소와 연계해 고독사 위기 가구를 찾아다니며 집안 일손을 거들어 주고 독거노인들의 말동무가 되어줄 예정이다.
세 자매는 "봉사는 특별한 게 아니라 이젠 삶의 일부가 됐다"면서 "다른 분들도 봉사를 통해 이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chase_are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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