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임산부 위한 보호출산제 통과…'병원 밖 출산' 줄일까
작성일 2023-10-06 18:32:20 | 조회 66
벼랑 끝 임산부 위한 보호출산제 통과…'병원 밖 출산' 줄일까
위기 임산부 익명 출산 가능…출생통보제와 함께 내년 7월 시행
"아이 알 권리 보호해야" 지적도…출산 후에도 선택 가능해 우려 제기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권지현 기자 = 익명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보호출산제'가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위기 임산부들이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채 안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위험한 병원 밖 출산과 '유령아동'의 비극을 줄여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산모가 쉽게 양육을 포기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와 더불어 아동의 알 권리 보호, 미혼모 지원 등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위기 임산부, 익명 출산 가능해져…지자체가 아동 보호
이날 본회의에서 가결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은 경제적·사회적·심리적 어려움으로 출산과 양육을 고민하는 임산부가 보호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경우 임산부는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아 지방자치단체에 인도하고, 지자체는 아동을 보호하면서 입양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이를 키우기 어렵고 출산 기록이 남는 것도 원치 않는 임신부가 위험하게 병원 밖에서 출산하거나 아기를 유기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보호출산은 '최후의 수단'이다. 이에 앞서 임산부가 직접 아동을 양육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는 것을 우선한다고 보건복지부는 설명했다.

지역상담기관이 양육 상담과 정보 제공, 각종 서비스 연계를 하게 된다. 중앙상담지원기관도 설치돼 상담 내용과 절차를 개발하고 교육을 실시한다.
이러한 안내를 받고도 보호출산을 선택하면 가명과 관리번호가 생성되고 이를 이용해 검진받고 출산한다. 의료비는 전액 지원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법 제정을 통해 위기 임산부들이 체계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어떤 임산부라도 안전하게 병원에서 출산하는 길이 열려 산모와 아동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 '유령아동' 사태 속 논의 급물살…내년 7월 시행
'익명출산제'로도 불리는 보호출산제 도입 시도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있었다. 정부는 2018년에도 저출산 정책 중 하나로 보호출산제 도입을 거론했다.
그러나 보호출산제가 아이의 알 권리를 빼앗고, 임산부가 쉽게 양육을 포기하게 한다는 반대도 만만치 않아 논의 진전이 더뎠다.
특히 미혼모 단체 등은 보호출산제보다 위기 임산부에 대한 출산과 양육 지원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전하던 보호출산제 논의가 탄력을 받은 것은 지난 6월 2천여명의 출생 미신고 아동, 이른바 '유령아동'의 실태가 알려지면서부터다.
감사원의 복지부 감사 과정에서 2015∼2022년 출생한 아동 중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이 2천 명 넘는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 아동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영아 살해 사건도 잇따라 드러났다.

정부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면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입법을 서두르기로 했다. 국회 논의도 급물살을 타면서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하게 하는 출생통보제가 먼저 지난 6월 말 국회를 통과했다.
출생통보제 통과로 미신고 아동을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병원 밖 출산'이라는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는 커졌다.
현재도 병원 밖 출산이 연 100∼200건으로 추정되는데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신원 노출을 꺼리는 임신부들이 더더욱 병원 밖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내년 출생통보제 시행에 맞춰 보완 성격의 보호출산제도 함께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이날 국회 통과로 두 제도가 내년 7월 19일 동시에 시행될 수 있게 됐다.
◇ "최후의 보루여야…아동 알 권리 보호 등 보완 필요"
진통 끝에 보호출산제가 통과됐지만, 더 해결돼야 할 과제도 있다.
이번 법안에 따르면 보호출산을 통해 태어난 사람은 추후 아동권리보장원에 출생증서 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데, 산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산모의 인적사항은 공개되지 않는다.
결국 생모가 원치 않으면 끝내 자기 부모가 누군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호출산제 입법 과정에서 참고한 독일 '신뢰출산제'의 경우 아동이 만 16세가 되면 연방가족청에 보관된 자신의 출신증명서 열람 또는 복사를 요청할 권리를 갖게 되고, 연방가족청이 이를 거부하면 가정법원에 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이번 특별법 제14조에 위기 임산부가 사전 신청 없이 아동을 출산한 후에도 생모 익명화와 아동의 보호조치를 희망하는 경우 1개월 이내에 신청할 수 있게 한 부분에 대한 우려도 있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이같은 조항은 병원 밖 출산을 막겠다는 취지와도 무관하고 오히려 출산 후 아동의 장애가 확인됐을 경우 등에 양육을 포기하게 할 우려가 있는 독소조항"이라며 "(보호출산제와) 비슷한 제도가 있는 나라들도 출산 후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울러 위기 임신부에게 충분한 상담과 정보 제공을 하고 미혼모 지원도 늘려 보호출산을 최후의 보루로만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충분한 지지가 있다면 아이가 엄마와 분리되지 않고 자랄 수 있게 된다"며 "보호출산제가 있다고 해도 이를 선택하는 임산부가 없어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영나 대표도 "아동 알 권리 보호와 임신 초기부터의 충분한 상담과 지원 등이 보완됐으면 한다"며 "후속 논의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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