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까지 봉사해야 하는데" 경기 최고령 자원봉사자 신봉섭씨
작성일 2023-09-29 09:39:50 | 조회 50
"100세까지 봉사해야 하는데" 경기 최고령 자원봉사자 신봉섭씨
94세로 안양시 명예의 전당 등재…22년간 3만597시간 기록
"나이는 문제 되지 않아…봉사하려는 마음과 정신이 중요"

(안양=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100세까지 봉사를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는데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이젠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 생각만 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아요."

지난 18일 안양시가 시청사에 마련한 '자원봉사자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신봉섭(94)씨의 소감과 표정에는 진심 어린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는 경기도 내 최고령 자원봉사자이자 최다 봉사시간을 보유한 어르신이다.
1998년 1월 자원봉사자로 등록한 뒤 2020년까지 22년간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온 그를 지난 20일 안양시 만안노인복지회관을 찾아가 만났다.
지금까지 자원봉사 시간이 얼마인지 묻는 질문에 신씨는 "3만597시간"이라고 또렷이 말했다.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꼿꼿하게 편 허리와 군살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어 10년은 족히 젊어 보였다.
그는 20년을 넘게 주말을 제외한 평일마다 찾아가 봉사를 한 만안노인복지회관이 고향이자 집처럼 편안하다고 했다.
신씨는 코로나19로 복지회관이 문을 닫기 전까지 주 5일, 하루 8시간 봉사활동을 했다.
집에서 15분가량 걸어서 복지회관에 오전 7시 40분여분께 도착하고 나서 8시부터 복지회관을 찾는 노인들을 위해 안내와 질서유지를 도맡았다.
식사하러 방문하는 노인들을 식당으로 안내하고 목욕탕 입장 시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먼저 온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래서 복지회관 이용 노인들은 무슨 일만 터지면 복지회관 직원보다 신씨를 먼저 찾았다.
그가 노인들끼리 다툼이나 말썽이 생겼을 때 원만하게 중재해 문제를 잘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또 복지회관 업무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복지관 직원에게 욕을 하는 노인을 달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신씨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봉사를 하게 된 것은 퇴직 후 무릎이 아팠을 때 지인의 권유로 복지회관에 치료받으러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아침 일찍 복지회관을 찾아온 노인 수백명이 문이 열리자마자 (당시) 2층 진료실에 먼저 가 치료를 받으려고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모습을 봤는데 무척 위험해보였다"며 "복지회관에 대책을 세워달라고 말했으나 상황이 바뀌지 않아서 내가 직접 질서를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회관에 먼저 온 노인들의 명단을 진료실에 알려줬고 진료실이 이 순서대로 진료하면서부터 노인들이 아침 일찍 계단을 위험하게 뛰어오르는 '오픈런'은 사라졌다.
신씨 덕분에 복지회관의 질서가 잡혀가면서 이용자들의 칭찬이 이어졌지만, 일부 노인들로부터는 "네가 뭔데 나서서 그러느냐, 왜 네 마음대로 하느냐"는 폭언도 들었다. 가끔 멱살도 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럴 때마다 질서 유지의 원칙과 효과를 설명했고 대부분은 그의 말에 결국은 수긍했다.
신씨는 스스로 자신은 '원칙주의자'라고 말했다.
성격적인 이유도 있지만 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하고 장교 시험을 통해 소위로 임관한 뒤 대위로 전역하는 등 17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생활 습관 때문이기도 했다.

신씨는 오랜 봉사 덕분에 돈을 기부하지 않고도 억대 기부자로 인정받아 2014년 11월 3일 안양시가 마련한 나눔의 날에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시는 당시 신씨의 자원봉사 누적 시간 2만756시간을 최저임금(5천210원)으로 환산해 1억800만원의 기부를 한 것으로 인정했다.
물론 자원봉사의 공적을 인정받아 2011년 국무총리 표창, 2003년 경기도지사 표창, 2007년 안양시 자원봉사왕, 2011년 경기도 금자봉 등 수많은 표창을 받았다.
그는 "봉사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며 "봉사하면서 나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나태해지지 않게 된다"고 했다.
지난해 몸을 다쳐 기력이 크게 감소해 봉사하지 못하게 됐다는 그는 그래도 매일 일정한 시간에 복지회관을 찾아와 운동하며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신씨는 "주변 노인들에게 봉사하라고 하면 '이 나이에 어떻게?'라는 말을 하는데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봉사하려는 마음, 정신이 중요하다"며 "점점 봉사자들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hedgeho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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