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기초수급자도 남 도울 수 있어" 2만시간 봉사왕 된 노숙인
작성일 2023-10-01 07:37:24 | 조회 35
[#나눔동행] "기초수급자도 남 도울 수 있어" 2만시간 봉사왕 된 노숙인



(대전=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노숙인, 고물 줍는 청년, 기초수급생활자 그리고 '봉사왕'.
대전에 사는 김다혜(34)씨는 이 모든 수식어를 아우르는 청년이다.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2011년부터 봉사의 매력에 빠진 다혜씨는 어느덧 봉사로만 2만1천시간 넘게 채운 숨은 봉사왕이다.
봉사활동이 삶의 원동력이라는 그는 1일 연합뉴스에 이를 "봉사로 새 삶을 얻었다"는 말로 표현했다.
"자원봉사는 제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존재에요.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분이 좋아서 웃거나 때로는 감동을 크게 받아 울 때도 있어요."
자원봉사를 만나기 전인 12년 전까지만 해도 다혜씨는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며 우울감과 외로움에 휩싸였다고 한다.
다혜씨는 3살 무렵부터 대전의 한 아동복지센터에 맡겨졌다.
가족 없이 홀로 지내오면서 학교폭력과 각종 사고로 몸과 마음이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시설을 벗어나 사회로 덜컥 나오게 된 21살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피시방을 전전하거나 길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몇 달간 이어갔다.
"이때 처음으로 구걸이란 것도 해 보고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길거리에 떨어져 있던 음식물도 주워 먹었어요. 노숙 생활을 했을 때 대전역 동광장을 오가며 무료 급식소를 이용한 적도 있어요."



노숙인 시절 무료 급식소를 이용했던 다혜씨가 지금은 자원봉사자로서 같은 곳에서 노숙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당시 어려웠던 다혜씨를 알뜰살뜰 챙겨주던, 지금은 다혜씨의 수양 가족이 되어준 이들의 응원 덕분이다.
수양아버지는 본인에게 은혜를 갚으려는 다혜씨에게 그 마음을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돕는 데 쓰라고 했다.
이 말에 용기를 얻은 다혜씨는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다혜씨 일정은 매일 같이 봉사활동으로 꽉 채워져 있다.
월요일은 문창동 무료 급식 봉사, 화∼금요일은 대전역 지하철 역사 내에서 시민책방 도서 업무 봉사, 매주 수·일요일에는 대전역 벧엘의집 무료 급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통해 오히려 제가 더 배우는 게 많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저도 몸이 아파서 계속 약을 먹고 있지만 봉사활동으로 만난 시각장애인을 통해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지체장애인을 보면서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지고 겸손해지더라고요."



봉사를 제외하면 그의 유일한 취미 활동인 야구 관람도 봉사활동의 연장선상이다.
다혜씨는 직접 구입한 야구공에 야구선수들의 사인을 받아 장기기증운동본부나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한다.
기부받은 이들이 노숙인이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김밥 한 줄이나 음료수 한 잔이라도 베풀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람들이 기초생활수급자인 제가 봉사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신기하게 보시는데, 봉사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사람도 남을 도울 수 있는 게 봉사의 매력이 아닐까요?"
다혜씨는 자신이 겪은 아픔과 어려움을 치료하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평생교육원에서 상담학을 공부하고 지난해 관련 학위도 땄다.
학비는 기초생활수급자인 다혜씨 앞으로 나오는 정부 보조금을 아끼고, 십시일반 길에서 고물을 모아 판 돈으로 어렵게 마련했다.
인생이 봉사활동으로 점철된 다혜씨는 본인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이 남을 위해 사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며 활짝 웃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소중하고 아끼고 싶은 걸 남한테도 베풀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에게는 야구 사인볼이 그런 의미였어요. '인생은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이 있잖아요. 삶이 힘들던 제가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sw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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