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몸 힘들지만,넉넉한 에너지 얻어" 27년간 봉사 앞장 이현자씨
작성일 2023-09-24 10:32:22 | 조회 42
[#나눔동행] "몸 힘들지만,넉넉한 에너지 얻어" 27년간 봉사 앞장 이현자씨
울산 남목2동여성봉사회 소속 다양한 활동, '울산자원봉사 명예의 전당' 올라
"무기력감 극복하려 시작한 봉사, 인생 전환점…건강 허락할 때까지 즐기고파"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자원봉사를 하면 몸이 힘든 데도, 그 피로를 채우고 남을 만큼 넉넉한 에너지를 얻습니다. 바로 그 점이 봉사의 효과이자 매력이 아닐까요."
27년여간 자원봉사에 매진한 울산 동구 남목2동여성자원봉사회 소속 이현자(63) 씨.
그 긴 시간 동안 다양한 봉사 경험을 쌓으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씨는 에너지 '소진'을 토로하는 대신, 도리어 봉사를 통해 스스로 '충전'되고 있다며 예찬론을 펼쳤다.
대전 출신인 이씨는 1984년 결혼하면서 남편 직장이 있는 울산에 정착했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 새로운 터전에 잘 적응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정감 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다고 한다.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자원봉사를 접하게 됐고, 1996년 봉사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집안 살림을 하면서 아파트 이웃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는 여유로운 생활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정이라는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래서 봉사를 시작했는데, 그 우연한 시작이 이렇게 큰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죠."
이씨는 봉사가 안겨주는 재미와 보람에 푹 빠졌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가 됐다.
행여 자원봉사로 가정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원칙도 정했다.
낮에는 자원봉사에 매진하되, 저녁 시간은 가족과 가사에 충실히 한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에 온 정성을 쏟는 아내를 이따금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했던 남편은, 이제 봉사에 대한 이씨의 진정성을 가장 잘 이해하며 활동을 지원해주는 응원군이 됐다.

처음에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돕는 활동을 주로 했다.
밑반찬을 전하며 말벗이 돼 드리고, 때때로 목욕이나 생일상 차려드리기 봉사로 든든한 딸 노릇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후 봉사 경력이 늘어나면서 그 영역도 점차 넓어졌다.
겨울철 새벽 인력사무소를 찾아 가혹한 추위에 일터로 나서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는 일을 비롯해 노인복지관 급식과 목욕 봉사, 대학병원에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 대상 재활치료 보조, 파티 기획·제작 능력을 활용한 취약계층 아동과 노인 생일잔치, 울산에서 열린 각종 국내외 행사 안내도우미 등 경계가 없는 활동을 이어 나갔다.
2018년부터는 적십자봉사회 장미회에도 가입해 재난 구호, 결연세대 물품 배부와 상담 등을 병행하고 있다.
더 전문적인 자원봉사 활동을 위해 최근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숱한 사람을 만나고 겪었을 이씨에게 가장 인상에 남는 기억은 무엇일까.
"가끔 일용직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시는 기초생활수급자가 계셨어요. 스스로 일을 하면서 수급 지원 없이 떳떳하게 살기를 희망했는데, 마땅한 직업을 구하지 못해 깊은 무기력감을 느끼며 자존감마저 많이 떨어진 상태였죠. 그 사정을 알고 이리저리 수소문해 경비 일자리를 알아봐 드렸어요. 3년째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데, 활력을 되찾으셨고 술도 끊으셨어요. 그저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라, 진정 어린 관심이 큰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씨는 울산시자원봉사센터가 선정하는 '2023년 울산 자원봉사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열정적인 자원봉사 실적을 인정받은 것이지만, 이씨는 그 공을 가족에게 돌렸다.
가족의 이해와 지원이 만들어낸 영광이라고 이씨는 설명했다.
6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지만, 그는 봉사활동의 열정을 누그러뜨릴 생각이 없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봉사가 주는 만족감을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자원봉사를 하려는 젊은이들이 없어서 걱정은 됩니다. 가끔 오더라도 힘들다고 포기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50대도 드물고, 60대 이상이 대부분일 정도로 '자원봉사자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요. 하지만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경제 활동이나 여가 생활이 중요해진 세태도 인정해야죠. 자발적인 마음이 없으면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봉사이니까요. 저부터 열심히 한다는 생각으로 봉사를 마음껏 즐기겠습니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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