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의 출근길] ②"채용하느니 부담금 낸다"…상반기 징수금만 7천794억
작성일 2023-09-09 08:32:07 | 조회 51
[발달장애인의 출근길] ②"채용하느니 부담금 낸다"…상반기 징수금만 7천794억
"장애인이 할 일 없어"…고용 안한 기업만 8천600곳 넘어
15∼64세 경증장애인 고용률 66.5%, 중증장애인은 27.1%
"장애인 일할 수 있는 여건 마련 시급"…"고용부담금 액수 올려야"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이다빈 인턴기자 = 7천794억6천만원.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집계한 올해 1∼6월 징수된 장애인 고용부담금 액수다. 장애인 고용을 외면해서 사업자에게 부과되는 이 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7%(623억원) 늘었다.
고용부담금을 납부한 민간 기업과 정부 공공기관 등도 같은 기간 8천480곳에서 8천618곳으로 소폭 늘었다.
장애인 의무 고용을 어긴 기관·기업에 고용부담금을 징수하고, 기업체 명단을 공개하는 제도가 시행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장애인 채용을 꺼리는 기업이 많은 게 현실이다.
특히 경증 장애인을 중심으로 채용이 이뤄지다 보니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중증장애인은 출근길에 오르기가 더욱 어렵다.


◇ "시킬 일 없어서, 준비 안 돼서" 채용 꺼리는 기업들
9일 연합뉴스가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공표한 '장애인 고용의무 불이행 기관·기업 ' 436곳 가운데 무작위로 50곳을 추려 장애인 미고용 이유를 취재한 결과, 대부분 "지원자 자체도 적을뿐더러, 이들이 할 만 한 일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제분 관계자는 "제조업이다 보니 몸을 많이 쓰는 업무가 많고, 안전 문제도 있다 보니 정신적·신체적으로 불편하신 분을 채용하기 어렵다"며 "장애인이 만든 제품 구매 등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대한산업보건협회 관계자는 "간호사나 방사선사 등 전문 직종이 많고, 업무 특성상 출장도 잦기 때문에 장애인이 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장애인 시설도 부족해서 근무 환경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재능교육 관계자도 "주 채용 분야가 학습지 교사인데, 장애인이 가정 방문해서 해당 업무를 수행하기엔 제약이 많다"고 전했다.

채용하고 싶어도 입사 원서를 내는 장애인이 적고, 채용 기준에 부합하는 인재도 찾기 힘들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기도 교육청 관계자는 "인사지침에 따라 전체 정원의 7.2%인 45명을 장애인으로 뽑기로 하고 공지도 했다"며 "필기시험 합격 기준을 넘은 이가 부족해 25명만 합격시켰다"고 밝혔다.
장애인이라 안 뽑는 게 아니라 합격 기준에 미치지 못해서 못 뽑은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면서 "합격 문턱을 낮춘다면 비장애인 지원자가 이를 역차별로 느껴 항의할 소지가 있다"며 "합격 요건에 발달장애나 지체 장애 등 장애 종류를 구분하지도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국가기관· 공공기관은 전 직원의 3.4%를, 민간기업은 전 직원의 3.1%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2021년 12월 기준 장애인 고용률은 국가기관· 공공기관 2.72%, 민간기업 1.55%에 그쳤다.
지난해 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장애인 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은 이유로 '적합한 직무가 부족해서'가 72.4%로 가장 많았다. 이어 '근무 환경이 위험해서'(5.3%), '장애인 근로자가 생산성이 낮을 것 같아서'(5.0%), '지원자 자체가 없어서'(3.7%) 등의 순이었다.

◇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요건 갖춰야"
장애인과 가족, 인권단체 관계자 등은 기업체가 단순히 '장애인이 일할 게 없다'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이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정도의 적극성을 주문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중증장애인 1명을 고용하면 장애인 2명을 고용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더블카운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들의 취업은 어려운 실정"이라며 "15∼64세 경증장애인 고용률은 66.5%지만, 중증장애인은 27.1%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나운환 대구대 직업재활학과 교수는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합격 기준과 직렬을 만들어놨는데, 발달장애인이 똑같이 경쟁해서 합격할 확률이 얼마나 높겠냐"고 비판했다.
공공기관에서의 행정 보조나 민원실에서 대민 지원·안내 등 발달장애인이 감당할 수 있는 분야를 만들고, 채용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 정도의 임용 과정을 따로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발달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교수는 "적응 기간이 비장애인보다 더 필요한 발달장애인 특성을 감안해 인턴십 과정과 함께 일할 동료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다"며 "그저 기존 시스템에 이들을 꿰맞추려고만 하다 보니 엇박자가 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정규 전국장애인연대 활동가도 "발달장애인을 채용한 이후 곁에서 이들을 가르치고 관리할 인력과 교육 자료 등이 마련돼야 한다"며 "기업체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고용부담금을 내는 게 더 저렴하고 간편하기 때문에 많은 기업이 고용부담금 징수를 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제반 사항 마련을 기업체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나 고용노동부 등 관련 기관도 적극 나서야 한다"며 "동시에 고용부담금 액수를 평균 임금 정도 수준으로 올려야 기업체들이 장애인 고용 의무를 더욱 무겁게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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