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이후가 더 위험…전 국민이 '생명지킴이' 돼야"
작성일 2023-09-10 08:02:25 | 조회 25
"재난 이후가 더 위험…전 국민이 '생명지킴이' 돼야"
코로나19 끝난 뒤 자살 증가 흐름…올 상반기만 7천명
"평소와 다른 말·행동할 땐 유심히…아이들 밀착관리"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코로나19 기간 누적된 정신건강 문제가 자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정신건강의학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자살 고위험군인 사회적 취약계층이 제때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살예방의날인 10일 한국생명존중재단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6천9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년 같은 기간(6천375명)보다 8.8% 늘어난 것으로, 코로나19 유행 기간 누적된 정신과적 문제가 팬데믹이 끝나면서 서서히 드러날 것이라던 경고가 숫자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나만 힘들다'란 생각에 좌절"…"치료 골든타임 지나고 있어"
재난에는 후유증이 따른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처럼 전 국민이 장기간 고립된 생활을 한 재난 뒤에는 특히 정신과적 후유증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과적 이상은 한가지 충격이나 이슈로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만성적으로 쌓인 문제가 관리되지 않으면서 병으로 발전한다"며 "지난 3년여간 누적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유행 동안 비대면 수업 등으로 또래나 교사와의 정서적 교류가 끊기면서 청소년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19세 이하 청소년 자살 사망자는 197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167명)보다 18.0% 늘었다.
특히 여성 청소년 자살 사망자는 108명으로 작년 동기간(73명)보다 48.0% 늘어 전체 집단 중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배 교수는 "이미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잘 관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며 "지금 당장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밀착 관리하지 않으면 높아진 자살 위험이 쉽게 안정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난 시보다 재난이 끝난 후에 취약계층의 심리적 어려움이 커진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화영 순천향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재난이 닥쳤을 때는 다 같이 힘들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취약계층들은 '나만 힘드네'라는 생각에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로나 시기 자살 사망자는 2020년 1만3천195명, 2021년 1만3천352명, 2022년 1만2천720명으로 코로나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2019년(1만3천799명)보다 감소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가 끝나면 자살률이 올라갈 수 있으니 코로나 시기에 자살률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 취약계층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계속 나왔었다"고 말했다.


◇ "적시에 정신건강서비스 연결"…"평소와 다른 행동할 땐 주의"
전문가들은 자살 사망자를 줄이려면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교수는 "모든 국민이 자살 예방에 관심을 갖고 자살 위험 대상자를 전문가에게 연결해줄 수 있는 '게이트 키퍼'가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자살 예방 교육인 '생명지킴이 교육'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생명지킴이 교육은 자살 위기를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 등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으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러 신호를 보낸다"며 "절망감이나 자살과 관련된 언어적 표현을 한다든가, 뜬금없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거나 소중한 물건을 나눠주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자살 암시 신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아이들의 경우엔 전문가가 조기에 개입할 때 치료 성과가 가장 좋다"며 "일상적으로 하던 등·하교나 숙제, 수업을 힘들어하거나 수면·식사 패턴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의료적인 처치가 필요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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