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산다]-25 '파리지앵에서 시골러로'…마을활동가 김지연씨
작성일 2023-08-26 09:30:53 | 조회 43
[지방에 산다]-25 '파리지앵에서 시골러로'…마을활동가 김지연씨
15년간 파리서 일하다 귀국…시골 풍경 반해 해남 '안착'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곳,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

[※ 편집자 주 =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인생의 꿈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서울로 서울로를 외칠 때,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자기가 사는 동네가 좋아 그곳에서 터전을 일구는 이들도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만들어갑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지 않고'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서 꿈을 설계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삶을 연합뉴스가 연중 기획으로 소개합니다.]

(해남=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시골이라 새로운 것들을 접하기는 힘들지만, 마을 '아짐'들과 함께 지내니 행복해요."
남도의 땅끝, 전남 해남군 현산면 분토마을에서 만난 김지연(38)씨는 올해 귀촌 3년째를 맞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시골살이지만, 김씨는 마을 어르신들과 서로 '아짐'(아주머니의 전라도 방언)이라 부르며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아짐들과 와인을 나눠 마시며 마을회관에서 화투를 치기도 하고, 겨울에는 김장 품앗이를 하며 정을 나눈다.
김씨는 "가끔 집이 비어 있으면 아짐들이 오셔서 풀도 베어주시고, 먹을 것도 가져다 주신다"며 "아짐들과 대화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대에서 패션산업학을 공부한 김씨는 2006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석사까지 마쳤다.
15년간 파리에서 머물며 한국 브랜드를 해외에 소개하는 에이전시 일을 하며 인정받았다.
2021년 잠시 귀국한 김씨는 지인의 소개로 1주일간 해남에 머물다 그곳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하고 말았다.
김씨는 "푸르른 나무가 많고 공기도 맑아 마치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첫 느낌을 회상했다.
마침, 마을 주민 소개로 빈집을 5년간 무료로 빌리면서 아예 눌러앉게 됐다.
달마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김씨의 보금자리는 겉으로 보면 여느 농가주택과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집안 내부는 작은 프랑스 가정을 보는 듯했다.

'뽐뽐파리'라고 이름을 붙인 공간은 전 주인이 사용하던 자개상과 낡은 가구를 그대로 두고, 프랑스에서 가져온 책과 빈티지 소품으로 소박하지만, 따뜻한 공간을 연출했다.
헛간은 작은 빈티지 샵으로 변신했고 돌담이 멋스러운 마당은 아담한 휴게 공간이 됐다.
김씨는 작은 집을 거점으로 벼룩시장이나 작은 마을 축제를 열었다.
최근에는 '분토리'라는 마을 브랜드를 개발해 티셔츠나 가방, 판촉물 등 굿즈를 만들었다.
지역 청년들과 함께 '한 번쯤 해남'이라는 소책자를 만들기도 하고, YMCA에서 카페 겸 샵을 열어 빈티지 물건이나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김씨는 "요리사가 꿈인 중학생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을 학교 프로그램도 하고 있다"며 "예술, 환경,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청소년들과 교감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김씨는 틈나는 대로 국내 브랜드를 해외로 소개하는 에이전시 일과 브랜드 컨설팅을 다시 시작했다.
지역에서 생산한 로컬 푸드나 굿즈를 스마트 스토어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지만, 만족할 만큼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지원 사업이나 청년 지원사업도 하고 있지만, 단기 사업에 그쳐 김씨의 고민이 깊다.
김씨는 "일확천금을 노리며 사는 게 인생의 모토라면 매우 힘들었겠지만, 다행히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해남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다.
minu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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