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세월의 흔적"…어르신 거친 손발 보살피는 채지영 씨
작성일 2023-08-06 10:33:55 | 조회 45
[#나눔동행] "세월의 흔적"…어르신 거친 손발 보살피는 채지영 씨
부산 가덕도서 고향 어르신 손발톱 관리하는 네일아티스트
"세심한 관리 위해 장갑도 안 껴…더 많은 사람 돕고싶어"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어르신들의 발을 만질 때면 그동안 얼마나 고된 세월을 살아오셨을까 싶어 마음이 저려옵니다."
채지영(45)씨는 6일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채씨는 강서구 가덕도에 사는 어르신들의 손발톱을 관리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
채씨가 보여준 사진 속 어르신들의 누런 발톱은 변형이 일어나 제멋대로 자란 모습이었다.
두꺼워질 대로 두꺼워져 운동화같이 윗창이 있는 신발은 신기조차 어려워 보였고 곳곳이 갈라지거나 부서져 있었다.

본업이 네일아티스트인 채씨가 봉사를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9년 고향인 강서구에 네일숍을 연 채씨는 지역 어르신 등 취약계층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한 손발톱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일만 할 수도 있었지만, 채씨는 고향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자처했다.
지금은 어르신들의 발톱을 관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덕도에 사는 어르신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하다 보니 장화를 많이 신는다. 습한 환경에 있는 어르신들의 발은 항상 습진과 각질로 성치 않은 상태다.
발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피부를 찌르기도 해 제대로 걷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채씨는 "허리가 좋지 않은 어르신들은 스스로 발톱을 자르기 어려워한다"며 "설령 허리를 굽히더라도 두꺼워진 발톱은 일반적인 손톱깎이로는 자르기 어려워 칼로 베어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고된 세월이 녹아 있는 어르신들의 발에는 각질이나 여러 균이 숨어 있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채씨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더 세심하게 발을 관리하기 위해 마스크나 장갑을 착용하지 않는다.
채씨는 "발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야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파악할 수도 있고 냄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며 "대신 봉사를 마친 뒤 균이 옮지 않도록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어 관련 질병이 생긴 적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매주 노인정에 가면 5∼10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오는데, 발톱 상태가 좋지 않아 한 분당 30분 정도가 소요된다"며 "정말 발 상태가 심각한 분들은 따로 가게로 모셔 와 정밀하게 관리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힘든 환경 속에서도 어르신들이 쾌차한 모습을 볼 때면 힘이 난다.
최근에는 봉사를 마친 뒤 자신이 담근 김치를 주며 고맙다고 인사한 어르신도 있었다.
채씨는 "처음에는 선뜻 발을 보여주기 부끄러워하던 어르신들도 이제는 '고맙다'고 격려해주신다"며 "관리를 받아 발 건강이 좋아진 지인들을 보고 자신도 부탁한다며 오는 어르신들도 있다"고 뿌듯해했다.
채씨는 어르신들의 손발을 더 체계적으로 관리해주기 위해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채씨는 "사람마다 다양한 사례가 너무 많다 보니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어떤 제품을 써야 하는지 등 알아볼 게 많다"며 "어르신들의 발 상태가 괜찮아지면 이제는 손도 보살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 내 조손가정이나 한부모가정 등 취약계층의 범위를 확대해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채씨는 "어린이들 가운데 발톱이 위로 휘어지며 나는 경우도 있는데 집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업계에 종사하는 다른 분들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더 많은 힘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psj19@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