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0평 집에 선풍기만 5대…취약계층에 더 가혹한 폭염
작성일 2023-08-02 17:37:40 | 조회 36
[르포] 10평 집에 선풍기만 5대…취약계층에 더 가혹한 폭염
부산 엿새째 폭염경보…"선풍기 틀어도 미적지근한 바람만"
기초수급 투석 환자 "물 한 잔 못 마시고, 샤워도 힘들어"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집 안에 있는 선풍기를 모두 돌려도 더위가 가시지 않아요.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게 여름을 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2일 오후 2시 부산 사상구 한 주택가에 있는 10여평 남짓한 60대 기초생활수급자 박모씨 집에 들어서자 미적지근한 선풍기 바람이 느껴졌다.
거실과 방 1개가 전부인 이 집에 있는 선풍기는 모두 5대.
박씨와 아내가 있는 거실에는 선풍기 3대, 지적 장애를 가진 20대 아들 2명이 있는 안방에는 선풍기 2대가 돌고 있다.
한낮 온도가 34도에 육박하자 박씨 부부는 방 안의 불도 끈 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에어컨을 켠 집이라면 차가운 바람이 새어 나갈까 봐 창문을 꽁꽁 닫아뒀겠지만, 이곳은 현관문을 비롯해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둔 상태다.
박씨는 "오후 2시가 넘어가면 너무 더워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문을 열어두면 밖에서 벌레가 들어오는데, 아들들은 벌레에게 물릴까 봐 더운 여름에도 팔에 토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더위는 취약계층에 더욱 가혹하다.
최근 유례없는 폭염이 한반도를 덮친 가운데 부산에서도 한낮 최고기온이 35도를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장애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생활이 어려운 취약계층은 푹푹 찌는 무더위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 동네 어르신들은 더 이상 집에 있지 못해 지난달부터 굴다리 아래 그늘로 모이곤 했다.
인근에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노인정이 있지만, 이마저도 텃세 때문인지 꺼리는 모습이다.

어르신들은 구청에서 설치한 벤치 옆으로 집에서 가져온 의자들을 삼삼오오 두고 오후 내내 내리쬐는 태양을 피했다.
양말을 벗은 채 슬리퍼를 신은 어르신들은 끓인 물을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해 가져왔다며 취재진에게 건네기도 했다.
아들과 함께 산다는 80대 김모씨는 "오후 1시쯤 나와서 저녁 먹으러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여기 있는 할머니들이랑 더위를 피한다"며 "요즘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 밤에도 계속 깨서 편히 잠들기조차 쉽지 않다"며 종이 부채를 흔들었다.

특히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더위에 취약한 질병까지 앓고 있으면 여름이 더욱 힘겹다.
16년 동안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박모(64)씨는 일주일에 3번가량 투석 시술을 받아왔다.
질병 특성상 물을 많이 마실 경우 폐에 물이 찰 수 있기 때문에 여름 내내 갈증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하루에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은 1ℓ 남짓이다.
박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걸어서 병원에 다녀오고는 했는데 최근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며 "투석을 받고 온 날이면 주사 흔적 때문에 샤워조차 못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팔뚝 곳곳에 주삿바늘 흔적이 있어 더운 여름에도 긴소매를 입고 다니는 투석 환자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부산은 이날로 엿새째 폭염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낮 최고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 현상도 8일째 계속되고 있다.
사상구를 비롯한 각 지자체는 취약계층을 위해 무더위 쉼터를 정비하거나 무더위 대응 물품을 배부하는 등 조치를 하고 있다.
psj1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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