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파괴 현장 담은 '지구 위 블랙박스'…감정 울리기를"
작성일 2023-09-28 12:33:40 | 조회 61
"환경파괴 현장 담은 '지구 위 블랙박스'…감정 울리기를"
구민정 PD "지구의 푸릇푸릇함 기록할 마지막 기회…오래 회자하길"
음악인들 기후 변화 현장서 공연…고경표는 AI 목소리로 등장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기후 변화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구구절절이 설명하기보다 심각한 변화를 겪는 현장을 배경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담으면 시청자들이 더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죠."
KBS가 창사 5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지구 위 블랙박스'는 예능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서 '환경 예능'을 표방한다.
다음 달 9일 2TV에서 첫 방송 되는 이 프로그램은 기후 변화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지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현장에서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담았다.
밴드 잔나비 보컬 최정훈은 빙하가 녹는 남극에서 노래하고, YB 보컬 윤도현은 해수면이 상승하는 동해를 배경으로 수조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이 밖에 자우림 보컬 김윤아, 댄서 모니카와 립제이, 그룹 르세라핌, 가수 정재형,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등의 퍼포먼스도 영상에 담겼다.
최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구민정 PD는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감정을 울리는 데 초점을 두자고 생각하고 제작했다"고 연출 의도를 소개했다.

구 PD의 설명처럼 '지구 위 블랙박스'는 감정을 울리고자 다양한 퍼포먼스 외에도 서사를 갖춘 드라마적 요소를 더했다.
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가 황폐해진 미래에 인류의 멸망 과정을 담은 '블랙박스 센터'가 마련된다. 센터에 혼자 상주하는 이른바 '기록자'가 지구가 아름다웠던 2023년을 담은 영상을 감상한다.
1부는 2054년을 배경으로 배우 김신록이 기록자로 출연한다. 2080년을 배경으로 한 2부는 배우 박병은이, 2123년을 다룬 3부는 배우 김건우가 그 역할로 등장한다.
기록자의 유일한 대화 상대인 인공지능(AI) 목소리는 배우 고경표가 맡았다. 과학소설(SF) '천 개의 파랑'을 펴낸 천선란 작가가 각본을 썼다.
구 PD는 "기록자들은 망해버린 지구에서 그나마 뭔가 바꿔볼 수 있었고 희망이 있던 2023년의 영상을 꺼내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평소 캠핑을 즐기는 구 PD는 매년 빠르게 달라지는 자연을 목격하면서 경각심을 느꼈고, 그 기분을 시청자에게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구 PD는 "벚꽃이 피는 시기가 빨라지거나 아예 매화와 같은 시기에 개화한다든지 매미 소리가 오뉴월에 들리는 걸 목격하면서 자연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고 떠올렸다.
이어 "기후 변화가 중요한 의제인데도 그 중요성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이 크지 않고, 관심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고 느껴졌다"고 했다.
구 PD가 '환경 예능'을 제작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21년 배우 공효진, 이천희, 전혜진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예능 '오늘부터 무해하게'를 연출한 경험이 있다.
그는 '오늘부터 무해하게'가 1%대 시청률에 머물렀다며 "유명 배우들이 출연해도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지구 위 블랙박스'를 기획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무거운 주제를 다룬 프로그램인 만큼 제작을 위해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구 PD와 '지구 위 블랙박스' 제작진은 지난해 6월부터 기획 회의를 시작했고, 자료 수집을 위해 모은 책들이 도서관을 방불케 할 만큼 쌓였다고 한다.
구 PD는 "누구든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전달하려면 저부터 그만큼의 지식이 있어야 하고, 어설프게 전달해서도 안 되니까 공부를 많이 했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동해의 상태였다"며 "지난 5년 동안 동해에서 축구장 70개 면적의 모래사장이 사라졌다고 하고, 실제 깎여나간 흔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높아질수록 너울성 파도의 폭이 커져 모래사장을 때리는 힘도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시청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연출자에게는 의미가 없다.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 시간을 투입한 만큼 성과도 기대하는지 묻자 구 PD는 "시청률보다도 오래 회자하는 것이 중요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뜨거운 반응도 좋지만,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그들이 오래도록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금이 그나마 남아있는 지구의 푸릇푸릇함을 기록할 마지막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가속 페달을 밟은 것처럼 나빠지고 있다는 게 관심을 가질수록 선명하게 보였어요. 지금이라도 그 모습을 전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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