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니'에 한국 감성과 음악 입힌 '너의 시간 속으로'
작성일 2023-09-10 09:32:31 | 조회 41
'상견니'에 한국 감성과 음악 입힌 '너의 시간 속으로'
'1인2역' 배우들 호연, '디테일' 변주한 연출…원작 넘어설까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그대여 난 기다릴 거예요. 내 눈물의 편지 하늘에 닿으면 언젠가 그대 돌아오겠죠, 내게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재생기에서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가 흘러나온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던 한준희(전여빈 분)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25년 전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권민주라는 고등학생의 몸으로 깨어난다.
어리둥절한 한준희의 앞에는 1년 전 사고로 준희의 곁을 떠나버린 연인 구연준(안효섭)과 똑 닮은 고등학생 남시헌이 있다.
2019∼2020년 방영된 대만 드라마 '상견니'의 국내 리메이크작 '너의 시간 속으로'의 모든 회차가 지난 8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상견니'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 '상친'(상견니에 미친)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난 드라마다.
'너의 시간 속으로'는 '상견니'의 이야기 흐름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작품의 주요 무대인 1998년 한국의 감성을 각종 소품과 당시의 유행 가요로 구현해 원작의 인기를 넘어설지 주목된다.


◇ 원작 충실히 따르면서 '디테일'과 한국 감성 입혀
한준희가 나타나기 직전 1998년의 권민주는 남시헌을 좋아해 고백했으나 거절당하고 좌절한다. 남시헌과 절친한 친구 정인규(강훈)는 권민주를 좋아해 이들 세 사람은 삼각관계다.
이런 상황에서 권민주가 전혀 다른 성격의 한준희로 깨어나면서 셋의 관계에 변화가 찾아온다.
한준희는 남시헌에게서 자신이 그리워하던 구연준과 닮은 점을 발견하고, 남시헌은 전과 달라진 권민주의 당차고 밝은 모습에 호감을 느끼며, 정인규는 권민주에게 전처럼 설레지 않게 된다.
수차례 시간을 이동한 끝에 한준희는 자신이 권민주가 된 것처럼 남시헌이 훗날 시간 여행을 통해 미래의 구연준의 몸에 들어가 자신에게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 주인공이 상대방과의 애틋했던 기억을 가진 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대방을 만나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졌다.
이 같은 이야기 구조와 인물들의 관계는 '상견니'와 대부분 일치한다.
다만 원작에서 대만의 인기곡 '라스트 댄스'였던 시간 여행 음악이 '너의 시간 속으로'에선 '내 눈물 모아'가 된 것처럼, 세세한 요소들을 변주해 새로운 재미를 더했다.
특히 주인공들이 주무대인 1998년과 2023년 외에도 2002년과 2007년 등 여러 시대를 오가는데, 다양한 소품이 한국의 시대별 모습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시대별로 버스의 디자인이 다르고, 사용하는 휴대전화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달라지며, 2002년에는 월드컵 응원이 한창이었고, 2007년에는 싸이월드를 쓰는 등 '디테일'한 볼거리가 드라마에 한국적인 감성을 입혔다.
리메이크된 다양한 음악도 감성을 더한다. 두 주인공이 운명적으로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네버엔딩 스토리'가 흘러나오고, 이 밖에도 '아름다운 구속' '벌써 일년' '사랑과 우정 사이' 등 추억의 명곡들이 귀를 즐겁게 한다.


◇ 원작에 뒤지지 않는 배우들 호연도 볼거리
지난 4일 제작발표회에서 김진원 감독이 "우리 드라마의 강점은 배우들의 연기"라고 추켜세웠을 만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원작과 견줘 손색이 없는 볼거리다.
원작에선 여배우 커자옌이 전혀 다른 성격의 주인공 황위쉬안과 천윈루 두 사람을 연기해 대만의 방송 시상식 금종장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너의 시간 속으로' 주연 전여빈 역시 똑 부러지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한준희와 소심하고 내성적인 권민주 두 역할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전여빈은 시선과 걸음걸이, 말투까지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표현해냈다. 36세의 직장인 한준희와 18세의 고등학생 권민주는 두 배의 나이 차이가 나는데도 전여빈의 연기에서 어색함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역시 남시헌과 구연준 두 사람을 연기한 안효섭, 절친한 친구와의 삼각관계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강훈도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 해소되지 않은 의문들…원작 단점도 고스란히 남아
'너의 시간 속으로'는 원작의 장점을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동시에 원작이 남긴 다소 아쉬운 부분도 그대로 따라갔다.
똑같이 카세트 음악을 듣고도 시간 여행을 하는 경우와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이유, 한준희와 권민주 또는 남시헌과 구연준이 왜 똑같이 생겼는지 등 이야기의 개연성과 관련 있는 의문이 끝내 해소되지 않는다.
남시헌이 몸을 차지하기 직전 구연준의 안타까운 서사가 그려지지만, 그 뒷이야기는 생략되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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